큰아빠

2009/09/01 21:31
  큰아빠 하면 몇 가지 기억들이 떠오른다. 아주 어릴적 큰아빠가 수건으로 내 머리를 말려주는 모습이나 큰엄마 큰아빠 영균이랑 함께 물놀이 하는 장면은 나중에 사진을 보고 또 봐서 머릿속에 남은 것이고, 내가 큰아빠 출근할 때와 놀러갈 때를 귀신같이 구분해내서 놀러갈 때만 쫓아가겠다고 나섰다는 일화는 친척들 사이에서는 명절 안주감.  그리고 동네에서 뛰어놀다 큰아빠한테 가서 입벌리고 개고기를 맛나게 얻어먹었다는 얘기도 못잖게 유명하다. 근데 이런거 말고, 오늘은 내 기억속에만 존재하는 것들을 얘기해볼까 한다.

  큰집은 늘 우리랑 이웃해서 살았는데, 한 번은 개천 다리만 건너면 되었던 때가 있었다. 할머니도 계시고 영균이도 있으니 매일같이 놀러갔는데, 같은 골목 앞집엔 자주 말썽을 피우는 젊은이랑 그의 어머니가 살고있었던 것 같다. 하루는 그이가 그 어머니께 심하게 무례한 행동을 했던 것 같고, 그에 광분한 큰아빠는 좁은 골목에서 그이의 아구통을 날려버린 것이다!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나는 건 큰아빠가 그이를 향해 여러 말썽은 둘째치고 어머니께 불손하다고 나무라신 거다. 그때는 그렇게 이웃 일에 나서는게 민폐보다는 미덕이었고 상황이 벌어지고 나면 젊은이들이 숙이는게 자연스러웠다. 그는 머잖아 큰아빠와 그의 어머니께 용서를 빌었고, 좋게좋게 끝났던 거 같다. 그 때로부터 큰아빠는 '단호할 때도 있는 어른'으로 기억에 남았다. 늘 다정다감하고 재밌는 아빠와는 뭔가 다른, 나름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이건 좀 자주 떠올리는 기억이다. 초등학교 때, 새로 개통한 전철역엔 문구점이 들어섰고, 그 앞에선 늘 뭔가 예쁘지만 그다지 쓸모없는 것들을 팔고 있었다. 집에 가는 길에 있고 아이템도 곧잘 바뀌다 보니, 지나가다 종종 멈춰 구경을 하곤 했다. 하루는 한손에 들어오는 통을 팔고 있었다. 안이 깊고 고무재질로 되었고 똑딱이처럼 열면 안에 거울도 들어있는, 반지같은 자질구레한 것들을 넣어놓기 딱 좋은 그것. 천원이었던가 이천원이었던가.  초딩이 재미로 사기엔 좀 비쌌던 것 같다. 친구랑 구경을 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큰아빠가 나타나서는, 하나 골라보라더니 금세 사주고 가시는거다. 그러면서 영균이한테는 말하지 말라고 하셨다. 얼떨결에 갖게된 그 통이 친구들한텐 꽤나 자랑거리였다. 그 보석함이라고 불러야하나 싶은 그 통은 아직도 내방 책상서랍에 있는데, 한참 외국동전들을 모아 넣어놓다가 동전냄새가 배는거 같아 비워두었다. 별 까닭없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은 그날, 서랍을 열 때마다 자연스레 그날이 떠오른다. 지금은 나와있으니 통이 서랍에 여전히 잘 있으리라고 생각 뿐.

여기 오기 전에는 모여서 식사를 하다가 무슨 얘기 끝에 내가 '잘 되겠죠,'라고 대답을 했는데 큰아빠가 '자세가 좋다,'며 칭찬을 하신 일이 있었다. 친척간에 낯간지럽게 칭찬하고 말고 할 분위기는 아니건만 순간 '아, 큰아빠가 이런걸 좋아하시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장학금 소식에 다들 왠지 모르게 축하하기 보다는 시샘을 감추기에 바빴던, 큰아빠만이 호탕하게 '축하한다'고 말씀해주셔서 '역시 우리 큰아빠야' 했던 그날이었던 것 같다.

늘 가까이 살다보니 가끔 불러 '재료가 남다른' 치즈떡볶이를 해주신다던가 재밌는 농담으로 웃겨주시던 거, 나보고 아빠랑 서로 내딸래미라고 하던 기억, 종종 외식하면 같이 불러내어 먹던 거 등등 생각하자니 끝이 없다. 지난 번 한국 들어가던 날 마침 큰아빠 생신이었는데, 나 온다고 특별히 식당예약까지 바꿔가며 불러주셔서 두 집이 함께 했었지.

내가 까불까불하면 농담반진담반으로 '저녀석이 저거' 하고 웃으시던 그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들리는 듯 하다. 그런 큰아빠가 이제는 이세상에 안 계시단다. 지난 주말만 해도 엄마가 늦기 전에 큰아빠 한번 뵈어야 할거 같다고 그러더니, 아빠가 병원 한번 더 가보고 얘기해준다고 했는데, 돌아가신줄도 모르고 아까 낮엔 큰아빠께 전화나 한번 해봐야 할까 했는데, 이제는 모두 영영 늦어버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병문안 왔던 친척들은 임종을 보고 가셨고, 덕분에 많은 이들이 큰아빠 떠나는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단다. 친척모임이 있으면 어서 파하고 친구모임에 가기 바빴던 큰아빠께, 문상 첫날부터 정말 많은 분들이 오가셨단다.

위로의 말을 전하려고 영균이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칠칠맞게 되려 위로받고 말았다. 내 마음 다 아실거라며 오히려 다독여준다. 차라리 같이 있으면 좋으련만, 그래서 큰아빠를 떠나보내는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으련만. 영균이를 통해 전화로 대신 절을 올리고 대신 꽃을 놓아드리는 것으로, 이렇게 큰아빠의 추억을 더듬는 것으로, 나만의 작은 식을 치른다.

최근에 많이 힘들어하셨다고 들었는데, 이제는 고통이 없을 거라고,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아직은 잘 모르겠다.

큰아빠, 편히 쉬시고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 바라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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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출국 전 날. 동네 횟집에서.


덧. 사진을 찾아보니 지난 봄 한국 갔을 때는 찍은게 없고, 2007년 출국 전 날 점심식사를 함께 한 사진이 있더라. 한동안 못 먹을 회를 먹인다고 부르시고는, 딸래미 보내고 어떻하냐는 아빠 대신 '네길 네가 알아서 가는거'라고 하셨다. 그때는 무슨 말씀인지 몰랐는데 이제와서는 어느 정도 진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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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유리 2009/09/07 18:27

    저는 큰아버지가아니고 큰 삼촌 돌아가신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도 큰 삼촌의 영향도 컸고.. 무엇보다 저는 돌아가시기 6개월전에 꿈에 그런 모습을 보고 친척들께 알렸지만.. 저를 미친 사람취급했었다는..휴..갑자기 맘이 안좋네요...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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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yubary 2009/09/16 15:28

      고맙습니다. 같이 힘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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