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박람회

2008/10/23 21:00

만체스터의 가장 큰(가?) 박람회장에서 취업박람회가 열렸다. 전날은 과학, 엔지니어링이 주제였고 오늘은 금융경제경영. 사실 경제보단 경영이 더 가까운거 아닐까나...라는 전통적 의미를 내세워보지만. 아 됐고.

박람회를 한두번 가다보니 대략 시선끌기용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 회사 직원들과 대화를 할 수 있다지만 그들은 상세한 설명을 담은 번지르르한 책을 배포하고, 덤으로 머그컵이나 스포츠 물병을, 가장 흔하게는 자기회사 로고가 박힌 볼펜 등을 나눠주는게 보통이다. 이미 생각이 있고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기업이 목표한 학교로 방문하는 설명회 같은게 더 쓸모있을 것이고 또 그런 사람들은 이미 홈페이지로 직접가서 책보다 더 자세한 글들을 읽은 바다. 이런 행사의 가장 큰 수혜자는 대학교 저학년생이 아닐까 한다.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재미? 아니라면, 학용품 및 기념품 수집엔 대단한 성공이겠고, 그런 점에서, 과학-엔지니어링 취업박람회를 한번 가볼껄 그랬다는 생각도 든다. 여긴 매년 '어느회사가 가장 끝내주는 기념품을 뿌릴것인가'도 만만치 않게 회자되는 곳이라. 작년에는 무슨 블루투스 카메라인지 뭐시깽이인지가 대박쳤다던데.

애리가 요크에서 이틀전 있었던 박람회가 심히 썰렁하였다는 소식을 전해준 바, 덩달아 김새버린 나, 그냥 홈페이지나 쟌니 뒤질까 하다가 Talk Programme이란게 있길래 거기에 의미를 두고 갔다. 한두개만 보고 와야지 했었는데 결국 세개를... UBS는 금융외에 얼마나 잡다한 업무가 존재하는지, 그러니 늬들이 관련전공이 아니더라도 지원할 이유가 월매나 많은지를 설명했다. KPMG에선 대략의 위험관리에 대해... 위험관리 정의를 쭉 보여주다가 자기 생각을 말하던 매니저, 위험을 모든 가능한 이익감소로 설명하는 그 경영스러운 관점이 맘에 안들어버리고... Loss의 그 막연한 의미라니... The Co-operative였나에서 나온 인사담당자는 입사지원서 잘쓰기에 대해 아주 명쾌하게 설명을 해줬다는.

그 Talk Programme 중간중간 각 회사들 부스에 들러 종이쓰레기를 받아오고, 이런저런 기념품도 받아오고. 들고다니기 힘들까봐 곳곳에선 회사 로고가 찍힌 가방도 나눠준다. 던지면 발광하는 얌체공이 젤 황당했다.;;; 금융, 경영, 컨설팅부문 회사만 한 80군데가 모이니 떡고물도 많더라. 제일 황당한건 초콜렛을 투하하던 켈로그였어. 켈로그도 금융산업에 뛰어든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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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의 풍경. 전시장이 비슷하지 뭐.


오늘의 박람회가 조금 유용했던건 Talk Programme외에도, 몇몇 회사의 신참들과 대화를 할 수 있었던 것. 이제 막 들어간 애들이다 보니 따끈따끈한 정보가 많다. 대단하다는 회사들일수록 시험도 많이 본다는데 그런걸 대비할 요령이라던가, 주요 정보처라던가. 방금 고지를 점령한 아이들이라 후하다. 런던 외에 만체스터 오피스의 자잘한 얘기도 듣고.

또 재밌었던 건 각 회사 찔러보기. "야,야, 요즘 경기도 안좋은데 너네 사람 안줄이냐? 까고 말해봐." 이런 식으로 물어보는거다. 워낙 큰 회사들이라서 그런건지, 향후를 위해서인지, 또는 자존심인지 "우린 절대 안줄인다. 작년과 같다."고 말하는 회사가 대부분이었는데. 바클레이스 직원과의 대화. "너넨 안줄여? 요즘 상황도 상황인데." 이때 바클레이스 직원 목에 힘들어가면서, "우리는 이번에 쫌 더 쎄졌걸랑. 후후후. 그래서 오히려 증원할 계획이야." 여기서 웃겼던건 이부분이다. 그 직원이 자세를 숙이며 목소리를 낮추고는 이런다. "저기, 네 등뒤에, 쟤들이야 말로 요즘 죽을똥 싸고 있을껄." 뒤를 돌아보니, RBS의 부스가 보인다. 우하하. 더 안습인건, 그러고 조금 있다 들이닥친 모 환경단체 학생들이 RBS 앞에 기습등장하여, 메가폰에 대고 "모년 모월, RBS는!! 무슨 반환경 프로젝트에 투자했고, 모년 모월, RBS와 HSBC는!!! 어쩌구 반환경 프로젝트에 투자했으며, 모년 모월, RBS와 4개 기타 기업은!!!! 뭐시라 반환경 프로젝트에 투자했고, 모년 모월, RBS가!!!!!..."하는 시위를 벌인것이다. 정말 그때 RBS직원들 기분 뭣같았을 거다. 이 학생들은 말리려는 주최측 직원과 숨바꼭질을 하며 메가폰으로 성토를 계속하다, 끝에 몇 욕지거리를 남기고 사라졌다. 기대치 못했던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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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이벤트. 사진찍을 당시 종이와 메가폰이 돌고 돌아 검은머리의 남자애가 외치는 중이었다.


마지막으로 오늘 꼭 하려고 했던, CV 검토 요청. 학교 취업센터에서 CV체킹을 해주려고 자리를 마련했다. 평소에도 할 수 있는거지만, 떡본김에 제사지낸다고, 예전에 대충 프린트해놨던걸 들고 나간터였다. 여기부턴 잘난척모드. 학교 어학센터쯤에서 나온것 같아 보이는 젠틀한 할아버지가 내 CV를 봐줬다. '야... 너 진짜 대단한 경험들 했구나.' -그게 좀 보기에 화려하지. 기가 차다는 듯, '너 영어는 어떻게 그렇게 잘하냐? 전공한것도 아니구만?' -내 영어가 대화 시작하고 3분간은 쓸만하다는건 나도 알아. '멕시코? 스페인어도 할줄 아냐? 진짜?' -역시 영국인들은 외국어에 감탄한다, 그전에 너네도 좀 배워보는건 어때. 이 할아버지 차근차근히 약간의 영국식 표현이나 스펠링을 고쳐주고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문제는, 추천인은 들어갈 자리도 없이 가득찬 두 페이지의 CV가 결국 읽기엔 조금 어려울 수도 있다는거였다. 더 문제는, 그렇다고 여백을 내기 위해 뭔가 뺄만한 내용도 없다는 거였다. 이 공간을 워쩔것이냐는 당면문제에, 조언 몇가지를 더 받고 일어섰다.

지나고보니 뭔가 알찬 박람회였던 것 같은... 사실 박람회 전시자의 입장이 아니면 둘러보는 것도 금방 지겨워지기 마련인데, Talk Programme 세개에 몇개 회사 직원들하고 수다떨고 할아버지한테 CV검토받으니 거의 박람회 시간 전부를 아낌없이 써버린 셈이 되었다. 개장한지 얼마 안되어 가서 폐장한다는 소리를 듣고야 나왔으니.;;; 박람회 너무 즐겨버린거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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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덤. 집에 오는길에 시청사 대문에 태권도 챔피언쉽 플랑카드가 붙어있길래... 폰카메라라 내용은 안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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