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때 정외과 수업을 처음 들어갔던 날이 생각난다. 교수가 뭐라고 하긴 하는데, 한국말이 맞긴 한데, 도무지 두루뭉술해서 정확히 뜻하는 바가 와닿지 않았다. 뭐라는겨... 투덜대면서 그길로 안녕했다. (물론 지금은 그 두루뭉술한 표현들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깨달았지만.)
그러고는 경제학 수업을 들어갔다. 기본이라 할 수 있는 X표 그래프를 놓고 요건 요렇고 죠건 죠렇고... 그래, 이정도 정밀, 정확도는 있어야 사회과학인겨, 하며 나의 전공으로 점찍었다. 얼마나 명쾌한가. 남음이 없이 똑 떨어지는 이론. 얽히고 설키는 것 없이, 골치아플 필요없이, 보여주는 대로, 보이는 대로, 그게 답인 환상적인 세계.
시간이 흐르고 보니 그 환상적인 세계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같은 걸 두고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사람의 눈이 세상엔 마땅히 존재한다. 환상적인 세계는 거기 있으되, 그걸 바라보는 눈과, 깨닫는 머리와, 말하는 입을 거치면 또 무한히 복잡다양해지는 거다.
경제학이 수학과 가까워질수록, 약간의 스킬만으로 좀 하는 척, 을 하는게 가능하다. 하긴, 계량경제학 마저도 결국엔 판단이 중요해지니, 소화란 피해갈 수 없는 영역. 하물며 기존의 경제학의 틀로는 설명이 부족하다며 사회관습도 진화론도 끌어들이는 제도경제로 오면, 아니아니 그냥 두루뭉술 모든 경제학이, 결국은 가치판단이 핵심이 되고 만다.
결국은 가치판단이어라... 아흐다롱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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